
수 클리볼드 Sue Klebold
1999년 열 세명의 사망자와 스물 네명의 부상자를 낸 콜럼바인 총격 사건의 가해자 두 명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딜런 클리볼드는 총격 후 자살했다. 수는 대학에서 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역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던 평범한 엄마였다. 현재는 우울증 조기 발견 및 자살 예방에 관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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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공부가 너무 지겨운 나머지 독서를 즐겨하다 대학교에 들어간 후 전문서적만 읽었다고 느낀 입사 2년 차 시절. 나는 자극적인 제목을 찾다가 발견했던 책이다. 이후 8년이 지난 지금 재독했다. 읽은 책을 또 읽었던 경험이 있는 분들은 느껴보았을 텐데 재독을 하면 내가 지나온 세월만큼에 이해도가 생겨서 책에 대한 만족감이 훨씬 풍족해진다. 20대 초반에 나는 이 저자가 책을 쓴 의도, 추천의 말 속 인물들의 글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자식이 스스로 총기를 가지고 재학 중인 고등학교에 일면식도 모르는 학생과 교사를 죽이고 다치게 했다. 근데 이 아들이 이해해보겠다고 책을 쓰고 마지막은 뇌건강이라던지 정책이라던지 잘못된 부분을 주욱 써내려가는 것 조차 이 작가에게 가당키나 한 건가, 이 출판사 문제 있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물론 완독은 했다. 그 때에 내가 글을 쓴다면 이 작가의 스타일처럼 덤덤히 쓰고 싶었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결혼을 하고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내가 다시 읽었을 땐, 이 여자의 처절하고 냉담한 자신의 성찰(수 작가님은 잘못이 없다구요... 착하고 불쌍한 사람아,,,ㅜㅜㅜ)과 자신의 일기, 사건 이후에 여정, 자식이 실행한 이 무자비한 사건을 이해하려는 노력 등이 건조하게 써내려간 글에서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어떻게 딜런을 이해할 수 있나. 자살을 하고 싶어서 살인을 한 그 악마를. 열심히 살아온 것 밖에 없는 불쌍한 여자에게 내려진 가혹한 상황을 몇 년의 세월에 걸쳐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 느껴질 정도의 글이었다.
자가 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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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89-90
미용사는 긴장한 상태로 잡담을 했고 나는 형형한 조명 아래에서 몸을 움츠렸다. 잡담을 이어가다가 미용사가 희생자의 어머니 한명도 오늘 오전에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왔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에 나는 놀랐다. 그 엄마가 앉아 있던 자리에 내가 앉았을 수도 있었다. 같은 비닐 가운을 입었을 수도 있고, 우리 두 사람이 각자 아이의 장례식 준비를 위해 의무적인 몸단장 임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떨리기도 했고 한편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우리집 차고 진입로에 서 있던 그때도 잠깐 그랬듯이 내가 애도하는 사람의 일원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바로 내 아들이 그 다른 엄마에게 가한 슬픔 때문이었다. 그 엄마를 가까이 느끼고 싶었고, 나는 그럴 수 있었지만, 그 엄마는 내 위로만은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잠시 이어진 듯한 느낌에 뒤이은 외로움, 슬픔, 죄책감 때문에 나는 무너질 것 같았다.
P. 159
극단적 슬픔의 증상인 기억상실, 집중력 부족, 감정적 쇠약, 극도의 피로감 등은 외상성 뇌손상의 증상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어떤 날은 내가 제정신을 잃은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했다. ... 옷을 다 입는데 거의 네 시간이 걸렸다. 다른 날 오후에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 어떠냐고 물었다. " 아무것도 안해.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나는 정말 당혹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친구는 자기도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어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게 아니야. 슬퍼하고 있잖아. 그거 아주 힘든 일이야."
P. 209
아이가 죽은 뒤에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통계 수치가 과장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 생활이 무척 힘겨워지는 것은 지당한 일이아. 가장 흔한 까닭으로 드는 게 여자와 남자가 애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아이가 자라서 어떤 존재가 되지 못한 것을 슬퍼하는 경향이 있고, 여자들은 자기가 기억하는 아이를 잃은 것을 슬퍼하곤 한다.
P. 216
딜런과 에릭이 죽기 전에 저지른 극악한 범죄를 인지하는 게 나한테는 중요했다. 이 책의 중심은 딜런에 대한 나의 사랑이기 때문에 딜런의 마지막 순간의 사악함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스스로 위안을 받기 위해 딜런이 한 행동을 축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딜런이 그날 죽거나 다친 무고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면 내 심정이 어땠을 까를 절대로 잊지 않을 생각이다. 소중한 아이들과 선생님을 기리기 위한 책이니까.
P. 244
내 뺨에 뽀뽀를 퍼부으며 깔깔거리던 반짝이는 금빛 머리의 천사와 화면 안의 그 남자, 살인자를 어떻게 합칠 수가 있겠는가? 빨리 나으라고 페가수스를 접어준 아이가 그 테이프에서 본 사람과 어떻게 같은 사람일 수가 있나? 그 아이를 키워온 나의 경향을 통합하면서 동시에 그 아이가 생애 마지막 순간에 어떤 사람이 되었는 지를 인정해야 했다.
P. 245
" 가슴 속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것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네번째 편지에 나오는 문구다. " 그 질문을 잠긴 방이나 외국어로 쓰인 책 처럼 그 자체로 사랑하려고 애쓰라. 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마라. 그 닯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을 경험하는 게 관건이다. 지금은 그 질문을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먼 날에, 점차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답을 경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내 마음이 다시 내 아들에게 완전히 열릴 때가 올 것이다. 내가 내 아들 때문에 죽은 희생자들 뿐 아니라 딜런을 위해서도 울 수 있을 때가.
P. 282
1999년에 나는 슬프로 무기력한 상태가 우울증이라고 생각했지 그게 많은 사람들의 '공허함'의 감정이라고 묘사하는 병적 우울증과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십대 청소년의 20퍼센트가 우울증 발작을 경험하며, 한번 경험하고 나면 다시 겪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우울증이 청소년기에는 성인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도 몰랐다. 어른은 슬프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반면 십대는 (특히 남자아이들) 방에 틀어박히고 짜증을 잘 내고 자기 비판, 좌절, 분노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P. 440
콜럼바인이나 버지니아테크, 샌디훅 같은 참사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왜?'이다.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 나는 '어떻게?' 라고 묻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왜' 대신에 '어떻게'라고 물으면 자기 파괴행동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 자체로 규명할 수 있다. 어떻게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길에 접어들게 되는가? 어떻게해서 뇌에서 자기통제, 자기보존, 양심 등의 도구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가? 어떻게 왜곡된 사고를 확인하고 조기에 교정할 수 있을 까? 연속체의 여러 지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끔 할 수 있을까? 뇌건강을 건강 문제로 바라보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밝혀나가지 못하는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까?
이런 문제들은 긴급한 관심을 요하는 문제들이다. '왜'만 물으면 무기력한 상태로 남는다. '어떻게' 라고 물으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고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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