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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최애작가)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환한 숨』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완벽한 생애』를 썼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무영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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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아 치료가 불가능해진 엄마는 호스피스로 전환되고 집에서 욕창을 예방하는 매트리스에서 꼼짝없이 돌아가시게 된다. 마지막을 함께했던 첫째 딸 정연은 결혼하고 아이 둘을 키우는 동생 미연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머니의 죽음은 두 자매에게 후회와 반성, 슬픔의 시작을 알린다. 서울에서 살고 있던 정연은 어머니의 고향 J읍으로 돌아가 어머니가 키우던 강아지 정미와 산책을 하고 어머니의 식당인 '정미칼국수' 에서 칼국수를 만들고, 어머니의 옷, 화장품, 신발 등을 사용하며 J읍 주민인 영준과 깊은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22년 9월 27일, 25년 2월 9일 이 날은 각각 나의 엄마들이 하늘나라로 떠나간 날이다. 22년은 친정엄마, 25년에는 시어머니.
작년 말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암진단으로 혼란스러운 며칠 동안 연말을 항상 함께했던 동료와 친구들에게 약속을 취소하기 위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친한 언니에게 이 소설을 선물 받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읽게된 이 소설은 친정엄마도 생각나게 해줬다.
그때 나는 정연이였다. 지금은 나의 시누언니들이 정연이겠구나 싶어 읽은 후 선물을 했다.
내가 그리고 이 소설 속 정연이 느꼈던 감정들과 행동들을 온전히 체감하고 있을 언니들이 조금만 덜 힘들길 바라면서.
나는 친정엄마와 병원 외래를 마친 후 생전에 마지막 끼니를 함께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다면 멸치국수를 먹자고 하진 않았을 것인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멸치국수를 먹지 못한다.
산 정산을 올라 바라보게 되는 멋진 풍경을 볼 땐 미친 사람처럼 눈물이 난다. 우리 엄마는 아프면서 그 좋아하던 등산을 못하게 된지 오래 됐었다. 이렇게 멋있는 데 이 풍경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눈물이 퐁퐁 난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라면 사무칠 만한 구절이 너무나 많고 페이지 마다 줄을 긎게 된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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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3
시간이 담긴 그릇…… .
잠든 엄마를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람의 몸은 시간이 담긴 그릇 같다고.
그렇다면 엄마의 몸에는 칠십일 년이 담긴 셈이다. 그 세월은 엄마를 아이에서 소녀로, 두 딸의 엄마로, 다시 할머니이자 암 환자로 변모하게 했다.
P. 14
어느 초여름에 베어 먹은 복숭아의 떫은 단맛이 어떻게 엄마의 몸 안에 퍼져갔는지, 배를 앓던 날의 베개 너머 꿈의 입구는 어떤 세상을 열어주었는지, 첫딸을 처음 품에 안은 순간 뜨겁게 눈물을 쏟아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런 것도. 박물관이나 도서관이 그 안의 기록물과 전시품, 서적과 함께 사라지듯 엄마가 엄마의 시간을 안고 이 지상에서의 자취를 거두어간다고 생각하면…….
허무했다.
P. 19 - 20
한 사람의 부재로 쌓여가는 마음이 집이 된다면 그 집의 내부는 너무도 많은 방과 복잡한 복도와 수 많은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리라. 수납공간마다 물건들이 가득하고 물건들 사이 거울은 폐허의 땅을 형상화한 것 같은 먼지로 얼룩진 곳, 암담하도록 캄캄한 곳과 폭력적일 만큼 환한 곳이 섞여 있고 창 밖의 풍경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그런 집 …… .
P. 31 - 32
생애에 부착된 타이머가 제로를 향해 성실히 움직이는데도 엄마는 욕창 방지용 매트리스가 깔린 침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그 어떤 뜻밖의 풍경도 더 이상 엄마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으 문득 나를 비참하게 했다.
P. 40- 41
엄마의 일부가 묻혔다.
칠십일 년 동안 엄마의 몸 안에 축적된 시간과 지상에는 더 이상 흔적을 남기지 못할 미래의 시간까지 함께 묻혔다. 엄마의 삶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과 인연을 맺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미완성된 역사가, 하지 못한 말과 가보지 못한 곳, 끝내 이루지 못한 일들까지 …….
P. 51
엄밀히 말하면 잠과 잠 사이, 잠이 길고 깊을 수록 점점 더 명료해지는 깨어 있는 시간이 …… 그때는 무얼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P. 68
아주머니가 엄마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떄면 나는 그때껏 믿어본 적 없는 신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됐다. 엄마의 통증을 차감해주기만 한다면 내 안에서 만들어진 신이라도 맹신하고 싶던 순간들이 있다.
P. 112 -113
엄마도 없는 J읍에 이렇게나 오래 머물 거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긴 했다. 엄마가 살던 집에서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의 화장품을 쓰면서 살아가리라곤, 길고양이들의 끼니를 챙기는 일과 정미와의 산책이 이토록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과가 되리라고느 칼국수를 요리할 줄 알게 되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대접하는 날이 오리라곤, 그 모든 것을 나는 단 한번도 예측한 적 없었다. 이제 내게는 확신에 찬 미래란 허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P. 127
초에서 시선을 돌리지 말라는 부탁이라도 받는 사람마냥 집요히 …… . 엄마, 하고 나는 오랜만에 엄마를 불러보았다.
" 다현이를 만났다면, 엄마가 좀 예뻐해주라."
말했고, 그곳에선 엄마가 다현이 엄마여도 질투하지 않을 테니까, 라고 뒤이어 속삭였다. 말하고 나니 다현이와 엄마가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상상됐다.
P. 132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 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슬픔으로 짜여졌지만 정작 그 슬픔이 결핍된 옷을 입은 채,
그리고 그 결핍이 이번 슬픔의 필연적인 정체성이란 걸 가까스로 깨달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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