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책

[민음북클럽] 북클럽에디션 임선우- 빛이 나지 않아요.

임치비 2025. 6. 3. 00:00

✔️ 작가소개
임선우
2019년 《문학사상》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 《초록은 어디에나》 《0000》이 잇다. 2023년 김유정작가상을 수상했다.

✔️ 독후감
《빛이 나지 않아요》
스쳤는 데 사람이 해파리로 변하게 되는 변종 해파리가 출현하면서 백수였던 '나' 가 해파리로 변하는 것을 도와주는 회사에 취직하면서 생기는 일화입니다. 남자친구 '구'는 이미 해파리로 변해버린 사람들을 해변가에서 치우는 미화원이 됬습니다. 원래 이 커플은 서울에서 밴드를 했는 데 망하고 시골로와서 살고 있던 와중입니다. 해파리가 되고 싶어하는 '지선'씨를 도와주던 '나'는 원래 같았으면 이미 해파리로 변하고도 남을 시간동안 빛이 나는 해파리로 변하지 않고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나약한 인간에서 한순간 빛이 나는 해파리로 변하게 되는 이 순간을 원하는 사람들. 그 순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P. 22
그런데 구, 사람들이 울지 않더라. 할머니가 해파리가 되었는데 아무도 울지 않았어. 쓸쓸하다, 내가 말하자 쓸쓸하다, 하고 구의 말이 메아리치듯 돌아왔다.
...
살기에는 지쳤고 죽기에는 억울한 사람들은 해파리만큼이나 많았다.

P. 27
둘쨰 날 나는 해파리로 변해가는 김지선 씨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김지선씨는 언제부터 김지선씨가 아니게 되는 것일까.

P. 33
빛, 현실에서는 절대 닿을 수 없을 만큼 환하고 아름다운 빛이 거기에 있었어요. 김지선 씨가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인간이 해파리 빛을 보면 좀비처럼 달려드는 것으로 묘사하잖아요.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저는 그날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았어요. 단 한번이라도 저렇게 환하고 아름답게 빛날 수만 있다면, 삶에 미련이 없을 것 같았어요.

P. 45
지선 씨가 견뎠던 시간이 수조안의 물처럼 고여 있는 듯했고, 나는 버티는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음이 깊고 어두워져서,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지선씨가 봤을 빛에 대해 생각했다. 지선씨가 본 빛은 어디에서 나타난 빛이었을까. 그 빛은 지선 씨가 오래전 바닷가에서 본 것처럼 환하고 아름다웠을까.

  
《여름은 물빛처럼》
'나'는 지하에 있는 독립극장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어느 날 집에 들어왔더니 전룸메이의 전남자친구인 '산'이 서있는데 장판에 뿌리를 내리며 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전 룸메이트에게 연락을 했으나 베어버리라는 엉뚱한 말을 듣게 되고 '산'은 그런 전애인과의 이별을 받아드리게 되면 지금 내려있는 뿌리가 없어질 거라는 또 다른 엉뚱한 말을 듣게되면서 같이 생활하며 지내게 되는 이야기 입니다. 근데 이 소설은 임선우의 참 말맛을 많이 느끼게 된 소설입니다. 흠뻑 빠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정말 좋은 작가를 눈 앞에 두고 읽지 않았네요.

P. 50
평소에 나는 사과는 대책 없어 보이고 대추는 고약해보인다는 이유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망고들은 어쩐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고, 생각 때문인지는 몰라도 적잖이 울적해 보였다.

P. 52
마지막으로 선영이를 보고 싶어서, 선영이가 올 때까지 여기서 나가지 말자, 그러느니 아주 뿌리를 내리자, 속으로 생각했는데 정말 뿌리가 나 버렸어요.

P. 54
방 안에서 홀로 곱씹으면 조금씩 아파지던 아름다운 말들. 나는 수진의 섬세함과 위태로움, 낮은 음성을 사랑했고, 나 자신보다도 수진을 사랑했지만. 2년 전의 일이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일 같다가도 눈을 감으면 바로 어제의 일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지키는 상황 같은 것은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역시 세상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는 나무가 되어 버린 남자를 바라보며 수진을 생각했다. 지속되고 축적되는 슬픔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P. 58
남자가 망고에 관심을 보여서 나는 남자가 볼 수 있도록 서서 망고를 잘랐다. 후숙되어 어제보다도 울적해보이는 망고를 반으로 가르자 씨앗이 나왔다. 그런데 씨앗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줄 만큼 지나치게 커다랬고, 나는 비로소 망고의 울적한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괴상한 씨앗을 품고 있으면 아무래도 침울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P. 63
사람들은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구나. 나는 아직 그런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수진이 떠났을 때는 아무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한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마음속에서 자꾸만 펄펄 눈이 내렸다. 모든 것이 얼어붙고 덮일 때까지 계속해서. 어떤 기후는 그치기까지 몇 개의 계절이 걸리기도 한다.

P.68
별명은 선명이가 잘 지었어요. 산이 말했다. 사귀기 전에 선영이가 나한테 지어 줬던 별명이 오이였어요. 왜요? 선영이는 내가 싫었는데 어딜 가도 내가 끼어 있었다는 거예요. 과방에도, 동아리에도 술자리에도. 짜장면이나 김밥처럼 좋아하는 음식에 자꾸만 오이가 들어 있는 것처럼. 그래도 친해진 다음에는 오이라고 했던 걸 취소해줬어요.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슬픈 별명은 처음 들어 보았다.

P. 77
그때 마다 나는 웃었다. 울어도 될 법한 상황들이었지만 자꾸만 웃음이 났다. 집이 불탔어도 바비큐가 구워져서 행복한 패트처럼, 붜진 침대로 해먹을 만든 매트처럼.

《낯선 밤에 우리는》
결혼을 하고 난임병원을 다니던 희애는 병원 역 앞에서 중학교 때 동창 금옥을 만나게 되는데요. 금옥은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 포교활동을 하던 도중이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아는 척 진짜 하기 싫은 상황인데요. 그런데 그런 그녀의 작은 방에서 희애는 따뜻한 밥을 얻어먹으며 힘든 임신과정을 치유 받습니다.  금옥을 보면서 친정이 생각나는 이유이 그래서 일까요. 그런데 시아버지 진짜 빌런이에요. 소름돋는 빌런.

P. 96
김치전을 두 장째 먹던 중, 나는 금옥에게 청년 숙소는 어땠는지 물었다. 좁았지. 금옥이 대답했다. 지금 같은 방에서 여덟 명씩 자고 그랬어. 신발을 신발위에 얹어 놓아야 할 정도 엿으니까. 금옥은 자기 손동에 손바닥을 얹으며 말했다. 지금 이곳보다 더 좁은 공간을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거기 있을 때 좋았던 건 자는 시간이었어. 양옆에 누운 사람들이랑 손을 잡고 잤거든. 손을 잡고 다 같이 취침 기도를 드렸어. 그러면 무서웠던 마음이 가라앉았어.

P. 98
무엇보다 이 다섯 평짜리 방 안에서만큼은 아이에 대한 집착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저 요리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설렘을 갖고 지켜보다가 맛있게 먹는 것. 그것이 이 방에서 일어나는 일의 전부였다.

P.111
나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금옥이 웃음기를 거두고 내개 다가왔다. 금옥은 옆에 가만히 앉아서 내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한참 뒤에 내가 말했다. 그러자 금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을 찾으러 일어난 줄 알았는데 금옥은 갑자기 소반을 폈다. 그러더니 냄비를 들고 왔다. 금옥이 국을 끓이거나, 국수를 삶거나, 떡볶이를 만들 때에도 쓰던 낡은 냄비였다. 네가 오는 사이에 만들었어. 이거부터 먹고 약을 먹어야 속이 안 상해. 금옥이 말했다.

---------------------
북클럽 에디션은 편집자레터가 진짜 찐맛집입니다. 정기현편집자님 애정합니다.
즐독하세용